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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일컫는 말은 두 가지 다른 어원에서 비롯된 버전이 있다.
영어의 ‘브레드Bread’ 독일어의 ‘브로트Brot’, 네덜란드어의 ‘브로트Brood’ 등에서 유래된 단어들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 ‘뺑Pain’, 이탈리아어 ‘파네Pane’, 스페인어 ‘팡Pan’, 포르투갈어 ‘팡Pao’ 등이 있는데, 이들은 라틴어 ‘파니스Panis’에서 유래되었다.
빵으로 읽는 세계사 중에서
그런데 왜, 일본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무역상이나 선교사들을 죽이거나 쫓아내면서도 네덜란드 상인들은 남겨두었던 것일까?
자신들에게 총포를 전해주고 카스텔라를 전해주었던 포르투갈을 내치고 네덜란드만 남겨두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난학’이라 하여 네덜란드의 학문과 의술을 배우고 ‘일란조약’을 체결할 정도로, 네덜란드가 일본의 구미에 맞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포르투갈인이나 네덜란드인 모두 같은 외국인이자 유럽인인데 포르투갈은 안되고 네덜란드는 되었던 이유는, 네덜란드가 종교적 간여 없이 오직 무역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가사키에 학교를 세우고 서양 의술을 가르쳤던 시볼트의 영향이 컸다.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 일본을 소개하는 책들을 발간하고, 자신이 모은 2,500여 점의 일본제품들을 박람회에 소개하였으며, 박물관을 열어서 유럽에 일본을 알렸다.
이로 인해 일본회화를 비롯한 일본의 문화가 네덜란드는 물론 유럽에 크게 유행하게 된다.
일본 그림이나 부채 등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일본 옷인 기모노를 입기도 할 정도였다.
‘해바라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고흐도 일본풍의 그림인 ‘우키요에浮世繪’에 심취하여 그 그림을 그대로 모사하며 연습을 하곤 했다.
일본이라는 동양의 먼 나라에 대한 동경, 이국적인 정취를 탐닉하는 경향인 ‘이그조티시즘’ 등이 맞물려 일어난 문화적 현상으로 ‘자포니즘’이란 용어까지 생겼다.
고흐는 없는 살림에도 477점의 우키요에를 모았는데 “우리 인상파 화가들은 일본의 우키요에를 사랑하고 그 영향을 받고 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자포니즘에 심취했다.
고흐가 우키요에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나가사키에 머물다 유럽으로 돌아간 시볼트 같은 인물이 있어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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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피자라고 하면 빨간 토마토소스를 올린 모습을 흔히 연상하게 되지만, 피자가 만들어진 초창기 때는 토마토소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피자에 토마토소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에야 가능했다.
토마토가 유럽대륙에 들어 온 것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이 이루어지면서였다.
게다가 그렇게 들어온 토마토는 낯선 먹거리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그 후로도 오랫동안 터부시되다가 18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피자나 스파게티에 사용되었다.
이렇게 유럽대륙에 새롭게 유입된 먹거리 중에서 터부시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농산물로 ‘감자’를 들 수 있다.
감자는 울퉁불퉁한 모양과 음습한 땅 속에서 난다는 이미지로 인해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라거나 ‘감자는 악마의 과일이다’라며 초기에는 동물이나 죄수에게만 먹였다.
그러다가 앙투안 파르망티에와 루이 16세,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노력에 의해 감자는 식용작물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니까 감자도 18세기 말 전까지는 사람들에게 터부시되던 음식이었다.
하지만 둥글고 빨갛고 예쁜 토마토가 도대체 왜 인기가 없었을까?
사실 처음 유럽에 들어온 토마토는 빨간색이 아니었다. 작고 노란색을 띠어서 ‘황금사과’라 불렸다.
그러다가 점차 개량을 거쳐 빨갛고 예쁜 모양의 열매를 맺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둥글고 빨갛고 예쁜 것도 식용을 막는 선입견으로 작용했다.
토마토는 가짓과 식물로 분류가 되는데, 가짓과의 식물은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성적으로 흥분시키고 음란한 마음이 일게 하는 최음제 성분이 있다고 믿었다.
토마토는 ‘사랑의 사과’라든가 ‘큐피드의 사과’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금욕적인 종교관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던 시대라 터부시되는 음식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그 땅에 입을 맞추고 십자가를 꽂는 일이라든가, 청교도 혁명이나 마녀사냥을 떠올려보면 조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처음 토마토를 도입한 스페인에서는 그나마 토마토를 좀 더 일찍 먹었지만, 이탈리아나 프랑스 지역에서 식용으로 사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일이 걸렸다.
기후가 토마토 재배에 맞지 않았던 영국에서는 더 오래 걸렸다.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를 죄악시 여겼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서, 청교도 혁명 후에 크롬웰 공화정부는 토마토 재배 금지령까지 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피자의 경우, 처음에는 돈 없는 서민들의 길거리 음식으로 시작되었기에, 당시에 인기 없고 그래서 값도 쌌던 토마토가 재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자며 토마토에 덧씌워진 누명이 벗겨지면서 피자에는 당연한 듯 토마토소스를 쓰게 되었다. 19세기 들어서 나폴리 지역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피쩨리아의 피자가 인기를 끌면서 점차 이탈리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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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져서 각자 나름의 문화를 이뤄온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게다가 기후나 지역 조건에 따른 식재료의 차이로 인해서 지방마다 음식의 특색이 뚜렷하다.
지중해 요리는 스페인 요리의 영향으로 맛이 강하고, 동북부는 오스트리아 요리의 영향으로 짜거나 단맛을 적게 사용하고, 북서부 이탈리아는 프랑스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식이었다.
피자도 마찬가지다. 피자라면 이탈리아를 떠올리고 이탈리아 곳곳에서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지역 차가 크다.
남부 나폴리 지역에서는 곳곳에 피자집을 볼 수 있지만, 북부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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