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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세계, 트리스탄 굴리

jhy_2023 2024. 8. 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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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세계
기상예보의 발전으로 우리는 며칠 후의 날씨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기상예보에서 날씨는 언제나 전국적이고 광범위한 것으로 기술되는데,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날씨를 거대한 대기 현상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날씨는 지역 전체를 덮는 담요 같은 것이 아니라, 경관에 따라서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날씨의 세계: 일기예보는 모르는 내 앞의 날씨를 읽는 법》은 우리 주변의 지극히 지역적인 날씨, 미기후(microclimate)에 주목해 평균 기온, 평균 강수량과 같은 수치가 알려줄 수 없는 ‘내 앞의 날씨’를 알아채게 해준다. 우리가 경험하는 날씨는 기상예보에서 다루는 범위보다 훨씬 좁고, 주변 지형이나 인공물과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주변의 경관을 살핌으로써 다가올 날씨의 징후를 관찰할 수 있다. 하늘과 바람, 언덕과 거리, 동물과 식물, 이슬방울이 내보이는 단서들을 따라가다 보면, 기계는 이해할 수 없는 섬세하고도 경이로운 날씨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트리스탄 굴리
출판
휴머니스트
출판일
2022.11.21

외따로 서 있는 나무 곁에서는 빗소리를 더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주목처럼 넓고 굵은 침엽수 아래 서 있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빗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좋아한다. 나무는 비와 소리의 우산이 되어 우리의 어깨나 옷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차단함으로써, 주위에 후두두 떨어지는 빗소리를 더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우리 집 근처 숲에 가보면 갈색 가랑잎이 깔린 바닥 곳곳에 초록색 고사리와 검은딸기나무, 담쟁이의 잎들이 흩어져 있다. 마른 잎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면 마치 타악기처럼 요란한 소리가 난다. 그에 비하면 고사리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힘없는 속삭임에 불과하다.

  잎의 경사도 역시 지면의 경사도와 마찬가지로 빗소리에 영향을 미친다. 검은딸기나무의 잎은 아래를 가리키며 부드럽게 늘어져 있는데, 이를 반영하듯 빗소리도 굉장히 희미해서 우리가 숨을 내쉬며 입술을 뗄 때 나는 소리에 비견할 정도다. 숲 바닥에 깔린 담쟁이 잎은 수평에 가깝고 질기고 견고하다. 비교하자면 너도밤나무 가랑잎과 검은딸기나무 잎의 중간 정도랄까. 빗방울이 너도밤나무의 가랑잎을 두드릴 때면, 마치 열심히 읽어 부드러워진 신문을 연필 끝으로 톡톡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숲 바닥에 깔린 담쟁이 잎이 비를 맞으면, 마치 반들반들한 책 표지를 손끝으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나는 서로 다른 것들이 매시간 다르게 공존하는 장소를 찾아가 눈을 감은 채, 그리고 다시 뜬 채로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는 한다. 눈이 이해하는 것들을 귀가 똑같이 이해할 때까지. 그러고는 다시 걷다가 소리 우산으로 적당한 침엽수를 발견하면 그 아래에서 같은 연습을 반복한다. 이때 역시 곧바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펼쳐질 경관을 귀가 눈에게 일러주도록 내버려둔다....

"날씨의 세계" 중에서
트리스탄 굴리
꼬리구름은 다소 애매한 징후이다. 비가 오기에 제법 적합한 기상 조건이지만 아직 대기 중의 수분이 그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날씨의 숱한 징후와 마찬가지로, 꼬리구름 역시 일종의 경향을 파악하는 데 가장 유용하다. 장대비 이후에 흔히 나타나는 꼬리구름은 날씨가 좋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면, 맑았던 하늘에 나타나는 꼬리구름은 비가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암시한다. 모체구름을 졸졸 따라다니는 비의 모습은 내게 하반신을 질질 끌고 떠다니는 만화 속 유령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더욱이 꼬리구름은 비를 내리기도 하고 내리지 않기도 한다. 마치 비를 다스리는 유령처럼 말이다....
국지성 비구름의 주요한 생성 요인 두 가지는 특정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뜨겁게 덥히는 태양과 습한 공기를 위로 밀어 올리는 대지이다. 육지는 언제나 바다보다 더 빨리 따뜻해지고 더 높은 고도에 위치한다. 이는 가장 중대하고도 단순한 날씨의 징후로 이어진다. 즉, 비는 바다보다 육지에 더 많이 내린다.

  지중해에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바다에 면해 있는 육지에는 소나기가 상대적으로 훨씬 자주 내린다. 우리 가족이 사는 서식스의 해변에서는 와이트섬과 헤일링섬은 물론이고 우리가 준비한 바비큐 위로 소나기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바다에서 햇살 속에 요트가 떠다니는 광경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비의 계절적 특징을 결정하는 숨은 요인은 대개 소낙성 강수와 지속성 강수의 차이에 있다. 다시 말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을 추단할 때 월별 강수량을 기준으로 삼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A라는 장소의 8월 강수량이 B라는 장소의 절반이었다고 하자. 그럴 경우 우리는 휴가 장소를 정할 때 A가 더 나은 선택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만약 B의 강수일수가 A의 절반이라면 어떨까? 이슬비가 몇 시간을 줄기차게 내려야 겨우 채울까 말까 한 강수량을 장대비는 단 5분 만에도 채울 수 있다. 몇몇 고원이나 수목이 울창한 언덕, 해안 도시는 이슬비가 끈질기게 내리기로 악명이 자자하지만, 총 강우량이라는 수치적 지표는 현실을 호도하기 쉽다. 마이애미의 강우량은 시애틀에 비해 50퍼센트 더 많지만, 일조시간은 시애틀에 비해 약 50퍼센트 더 길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든 빗방울에는 최대 크기라는 것이 존재한다. 굳이 없어도 우리가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복잡한 공식을 사용하여 과학자들은 빗방울의 반지름이 약 6. 2밀리미터보다 커지면 그 빗방울은 부서진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비교적 덜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내 경우에는 빗방울 크기의 범위를 ‘이마를 식힐’ 정도에서 ‘콧등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 사이로 한정한다....
이제 우리는 구름의 모양에 익숙해졌다. 구름은 크게 딱 세 가지 유형으로 묘사할 수 있다.
쌘구름 가족은 수북이 쌓인 모양이고, 층구름 가족은 겹겹이 층진 모양이며, 털구름 가족은 성기게 흩어진 모양이다.
모든 구름은 이 세 범주에 개별적으로든 공통적으로든 들어맞는다.
층구름 가족에 속하는 구름은 이런저런 징후를 실어 나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늘을 넓게 뒤덮는다는 점에서 층구름 가족은 현재의 날씨가 오랫동안 유지되거나 변화가 몹시 더디게 진행되리라는 사실을 거의 언제나 우리에게 일러준다.
구름에서 징후 발견하기의 진정한 기쁨은 쌘구름과 털구름 가족을 잘 알아가는 과정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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