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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고양이 종말에 반대합니다
김보영이 재구성해 소설처럼 엮었다. 2019년 출간되어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선정되는 등 적잖은 반향을 일으킨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지상의책)의 후속편 기획으로, 전편에서 ‘인류를 구할 답’을 찾고자 했다면 《SF는 고양이 종말에 반대합니다》에서는 인간을 넘어 ‘비인간’이라 칭해지는 다양한 존재와 공존하는 삶을 모색한다. 전편인 《SF는 인류 종말에 반대합니다》에서 SF 속 ‘엉뚱한 질문’에 착안해, 허무맹랑해 보이는 상상이 과학기술을 통해 실현
- 저자
- 김보영, 이은희, 이서영
- 출판
- 지상의책
- 출판일
- 2024.01.19
“그런 건 그만두고, 뭐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 보거라.”
“예? 제가 말입니까?”
양갱의 꼬리가 너구리처럼 팡 터졌다.
“그래, 저 산짐승 같은 인간이 내 힘을 다 빼놔서 당장은 못 떠나겠다. 조금 누워 쉬어야겠으니 뭐든 이야기해 보거라.
” 양갱은 한참 꼬리가 팡 터진 채로 석상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죽었느냐?”
“……어, 어흠, 라면과 참기름이 싸웠는데 라면이 잡혀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그랬는데?”
“참기름이 고소해서…….”
“…….” “참기름도 잡혀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라면이 다 불어서…….”
“…….” “알고 보니 소금이 한 짓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소금이 다 짜서…….”
백설기가 납작해진 몸을 홱 뒤로 뒤집었다. 누운 채로 움직이느라 잠시 짧은 팔다리를 공중에 휘저어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이야기 짓는 재주가 없어서…….”
SF는 고양이 종말에 반대합니다 중에서
“희한하지 않니? 그러니까, 세상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잖니.”
“그렇지요……? 저렇게 열심히 시위까지 할 정도로요.”
“동성애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차별금지법도 반대하고, 동성애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도 폐기하려 하고, 동성애자들이 같이 살게 된다면서 생활동반자법도 반대하는데, 로맨스에서는 동성애 장르가 대인기인데 거기다 남자가 임신하기까지 하는 장르가 메이저라고?”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더니 그 말이 정답이구나…….”
쓰러진 사람이 중얼거렸다. 직원이 싱크대에서 수건을 따듯한 물에 적셔 달려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죠? 아파서 헛소리하는 건가요?”
“돈만 있으면 모든 걸 누리며 잘살 것 같지만 결국 산업사회의 부산물인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닥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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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훌쩍이는 사이에 작가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꼭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본 풍경 같네요…….”
“아, 그 영화! 저도 봤어요. 지구 환경이 파괴되어서 인류가 우주로 이주하지요?”
“네, 물론 아무리 지구 환경이 나빠져도 우주가 지구보다 좋은 환경일 날은 오지 않겠지만요.”
“왜요?”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하잖아요. 우리는 이 지구라는 환경에 맞추어 진화한 생물이에요. 중력, 대기압, 대기 구성, 온도, 하루나 1년의 주기마저도, 모든 생체 조건이 지구라는 별에 맞춰져 있단 말이죠.”
“그래도 우주 어딘가 지구와 같은 행성도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우리의 시야가 닿는 곳에는 없지요. 그런 행성으로 갈 기술이나 비용을 생각하면 지구를 살리는 편이 백배 싸요. 그리고 지구에도 미개척지가 많아요. 이를테면, 지구가 온난화로 극단적으로 더워진다고 해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느니 극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이 낫단 말이지요.”
“그러면 지구가 오염되어 우주로 진출하는 이야기는 왜 그렇게 많은 걸까요?”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랫동안 자기가 SF를 쓴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대요. 그러다가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이 ‘아니, 쟤는 저렇게 훌륭한 SF를 쓰면서 자꾸 자기가 SF를 안 쓴대’ 하고 투덜거리는 바람에, ‘응?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SF를 쓴다고?’ 하고 어리둥절해하다가, 르 귄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아이쿠, 내가 SF를 썼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해요.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되면서, SF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창작의 형태가 되었다는 거죠.”
작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이지 왜들 그리 성별이분법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세계 최대 종교가 단성생식 종교인데.”
단결이 어리둥절해했다. “단성생식? 무슨 종교가?”
“예수님 단성생식으로 태어났잖아.” 그 말에 모두가 잠시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네요. 성령을 썼지, 정자를 안 썼으니……. 생물학적으로는 단성생식이구나.
사생아가 정설인 줄 알았는데…….
정설 바꾸지 말아줘……. 직원이 숨을 죽이며 킥킥 웃었다.
단성생식이 교리상 정설이잖아. 단성생식으로 태어난 분을 모시는 종교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모순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동성애 반대는 예수님 생각도 아니고 성서에도 안 나오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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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현대사회는 예전보다 복잡해져서, 사람이 한 사람 몫을 하는 데 오래 걸린단 말이지. 예전에는 스무 살 이전에 자기 몫을 했다면 지금은 서른 살은 넘어야 해.
아, 청년 나이를 39세까지 올린다는 기사를 봤어요…….
청년이 계속 저를 앞지르고 있어요. 이러다 죽을 때까지 청년으로 살겠어요…….
서른 넘어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서른 넘어서까지 키우려면, 결국 내가 낳은 아이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게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 올 가능성은 별로 없단 말이야. 더구나 이제 가정을 유지하려면 맞벌이를 해야 해서 육아할 사람은 없는데, 육아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졌어. 더해서 공동체는 해체되어서 도와줄 사람도 없어.
결국 현대사회는 육아에 불가능한 수준의 초인성을 요구하게 되어 버렸다고. 육아는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이어야지 초인적인 일이 아니어야 하잖아.
부계제에 집착해서지.
학자가 맥주를 마시며 말하자 세 사람이 모두 돌아보았다.
성별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혐오, 동성애 혐오, 출산율을 해결할 수 없는 것까지도.
어, 부계제에 집착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설명을 더 해 주시겠어요?
말하자면, 아버지에서 아들로 혈통이 이어지는 제도에 집착한다는 거야. 그러려면 무조건 남자에게 여자가 하나씩은 배당되어야 하는데, 동성애를 하면 그 원칙이 깨져 버리지. 결국 정책입안자들은 대부분 늙은 남자고, 그 사람들은 남자에게 여자와 아이가 배당되느냐 마느냐 말고는 생각하지 않아. 출산도, 아기도, 육아도 생전 관심을 둔 적이 없어.
그런가요…….
정말 출산율을 걱정하면 비혼 출산이며 혼외 임신은 왜 막고, 레즈비언의 출산은 왜 욕하며 미혼모는 왜 돌보지 않겠니? 아기의 생명이 정말 중요하면 어떻게 태어난 아기든 모두 소중하게 길러야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왜 낳았냐는 비난만 쏟아내지 않니.
학자는 냉소를 지었다.
그 아이들은 남자의 아기가 아니거든.
아. 아기를 어떻게 보살피는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 여자와 아이가 잘 배당되는가만 생각하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군요.
그래서 여자는 늘 모순에 처하게 되지요. 물론 《시녀 이야기》의 주인공도 성녀이자 창녀이자 어머니이자 가정부로서 역할이 중첩되어서 모순에 처하지만요.
아. 흔히 여자에게 성녀와 창녀를 동시에 원한다고 말하는데, 학대받는 것마저도 역할에 속하는구나.
응. 잔 다르크 생각해 봐. 성녀이자 창녀고 학대받는 여자지. 중세 화가들, 늘 잔 다르크를 헐벗은 차림새로 불에 타 죽는 장면만 그린다니까.
그래, 하지만 혐오하는 사람들은 늘 이유를 찾아내겠지. 그 사람들은 딱히 이유가 있어서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마음에 혐오가 있기에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니까.
그렇지. 재능이나 자본의 불균형한 배분을 생각하면 못 가진 사람이 가진 사람보다 많을 수밖에 없고, ‘소수’라는 말이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자가 사회에서는 다수지. 그런데도 자기는 지금 가난하지만, 반드시 성공해서 가난을 탈출할 것이라면서 부자를 위한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지.
사람은 자기가 강자라고 믿고 싶어 하고, 때론 그 믿음이 현실적인 이득보다 중요하니까…….
그래. 혐오도 자기 안에 있고 사랑도 자기 안에 있으니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물건도 아낄 줄 알겠지.
《에코 페미니즘》13,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마리아 미즈Maria Mies, 1993
이 책은 환경과 인간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큰 테제를 줄기로 여성과 자연의 삶을 엮어 가는 사회학 서적이에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파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맥락에서는 중요한 화두를 던진 책이지요.
그 차원에서 ‘어떤 성장을 할 것인가’, ‘무엇이 자연과 공존하는 성장인가’라는 문제를 페미니즘과 함께 제안한 책이기도 해요. 땅, 물, 환경, 공기를 잘라내어 상품화하는 것이 노동, 인간, 여성성을 잘라내어 상품화하는 것과 얼마나 다르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요.
나는 변호사는 인간이 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판사는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변호사는 맥락을 만드는 사람이고 판사는 해석하는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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